[민주신문=박정익 기자]“그동안 김 의원이 국회 국방위에서 활동하며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때로 날카로운 지적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월 3일 19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임기가 끝나는 김광진 전 의원을 향해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자청해 건넨 작별인사다. 앞서 김 전 의원은 국방위원들에게 질의를 마친 뒤 “이 자리가 제 임기 중 마지막 공식 활동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제 성격이 부드럽지 못해 (국방부 소속) 여러 관계자가 고생하셨을 것 같다. 그런 부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4년간 국방위 활동의 소감을 전했다.

민주통합당(現 더불어민주당) 청년비례대표, 19대 국회 최연소(만 31세) 국회의원 및 당 최고위원, 2012년 9월 ‘노크 귀순’ 공개, 2014년 온 국민을 분노케 한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사병 수통 30년 만에 교체, 2015년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록을 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5시간 33분 등은 김 전 의원이 19대 국회에 남긴 기록들이다.

김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재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는 현재 서울 여의도에서 ‘함께 여는 미래’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정의가 강한 것을 이기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정치인 김광진을 만나 그간 살아온 이야기와 19대 국회의 못 다한 이야기, 최근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5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공식 백수로 지내고 있다(웃음). 법적으로는 5월 30일까지니 어떻게 보면 4개월이고, 총선을 기점으로 하면 한달 반이 더 늘어나고, 게다가 저는 경선에서 졌으니 그보다 한 달 전 임기가 끝났다. 백수 생활이 6개월이 넘는다.

그래도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강연‧팟캐스트‧기고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도 지난 4년의 의정 활동을 통해 얻은 많은 것들, 인적 네트워크‧정보, 저를 통해 시민들이 기대하는 정치적 희망들을 모아 공공재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19대 국회 활동 당시 가장 아쉬웠던 점은.

▶4년 내내 야당만 해서 여당의원들처럼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물리적 아쉬움은 있지만, 하루하루의 아쉬움이라든지 4년간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과 후회는 하지 않는다. 현재 20대 국회가 여소야대의 모습을 시민이 돼 TV로 봤을 때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고민들, 재선 의원이 돼서 힘 있게 일을 해보고 싶은 안타까움, 재선이 됐으면 임기 중 반은 야당, 반은 여당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은 있다.

국회 국방위를 4년 동안 했다. 다른 법률도 소중하고 의미가 있지만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문사’라는 것, 꽤나 매진했다. 통상 토론회는 한 번 정도 이벤트 같이 진행하고 법안내고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의문사만 가지고 토론회만 15회 정도 하고, 법안 발의하고 국방부를 설득했다. 당시 여당에는 군 출신이 4명이었는데 그 벽을 뚫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군 의문사 법안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미완의 법이다. 역대로 많은 군 의문사 사건이 있었고, 그 유족들의 한을 풀어드리려 법안을 시작했다. 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면 ‘미래법’이다. 법 이전의 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특별법을 해야 하는 것이고, 노무현 정부 때 만들었던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같은 국가 기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법 시행 이전) 과거에 있었던 사람에게 보상하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 기구를 만드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해 아쉬움이 크다.

법이 시행된 이후 사망한 사람의 경우, 자살한 사람의 경우도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지만, 과거 많은 사람이 군복을 입고 사망을 했는데도 국립묘지에 못 가고 있다. 나중에 국회에 다시 들어가게 되거나 정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법을 처리하는 것이 목표다. 국가 보훈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돈을 얼마나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얼마나 예우와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 전 의원은 필리버스터가 상징적이다. 당시 어땠나.

▶그 때 같이 현장에 계셨으니 아시겠지만 우리가 의원총회를 4시간 정도 하고 있었다. 의총 동안 10명 중 8~9명은 필리버스터를 반대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선거기간인데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법안을 반대하고 나서면 선거를 치룰 수 있겠느냐는 우려와 염려가 컸다.

게다가 다른 나라는 성경과 만화를 읽어도 되지만, 우리는 법안과 관련된 것만 발언해야 했다. 한 두명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의원들이 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저를 진짜 아끼는 선배 의원은 “소신을 지키고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좋은데 이번 선거는 포기해도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저는 1번 주자라 원리원칙에 입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7시 본회의를 정의화 전 의장이 선언한 상태에서 당시 이종걸 원내대표가 5시간만 끌어달라고 요청했었고, 그동안 필리버스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웃음). 다행히 정보위 법안소위 위원이라 그 자료만 챙기고, 화장실 한 번가고 대기 중이었다.

올라가 있는 동안은 인터넷을 볼 수가 없어서 상황을 몰랐는데, 내려와 보니 ‘김광진 힘내라’는 검색어가 몇 십만 건이 되기도 했다. 결국은 정치인들이 정치이론으로 계산하고 평론가들이 평론하는 수준을 국민들이 항상 뛰어 넘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필리버스터가 나왔으니 필리‘밥’스터를 뺄 수가 없다.

▶사실 새누리당이 참 안타깝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가 했던 필리버스터는 법률이기 때문에 폐기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100시간, 혹은 1000시간 필리버스터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 법안 상정을 해 표결하게 돼있다. 그렇지만 인사안의 경우는 보고 후 24시간, 72시간 이후는 자동폐기가 되는 것이라 72시간만 끌면 자동 폐기되는 필리버스터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들이 신청할 수 있는 기간에 신청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72시간 동안 이야기할 자신이 없어놓고 그냥 밥 먹자고 했다. 19대 국회가 국회선진화법으로 식물국회가 됐다고 하면서 완전 동물국회를 만들어 놨다. 최소한 의원의 품격과 품위를 지켜가면서 싸울 수 있는 것인데 국회의장실로 가서 폭력을 하고, 밥 먹자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야당 연습하는 것도 조금 더 격 있게 했으면 좋겠다.

▽4년 동안 국방위를 했다. 사드와 군내 성폭력 등 최근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국방위 간사로 있었더라면, (사드배치에 대한) 우리당 당론 등 이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김종인 전 대표의 체제였다 하더라도 국방위 간사의 입장이 명확하다면 의총 등 의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많이 안타깝다. 국방위 특성상 전문성이 부족할 수는 있는데, 빨리 당의 입장이라는 것들과 맥을 같이 했으면 한다.

성폭행이나 방산비리는 19대 국회나 20대 국회나 25대 국회까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지 발생한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한 처벌 문제 혹은 그 부대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 자체가 인권이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지 않나.

▽같은 지역구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어떻게 보는가.

▶공개적이든 비공개든 그 분의 자유이긴 한데, 결국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 아니겠나. 본인의 목적달성을 위해 (단식을) 하는 것이니까 대중한테 보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단식이라 하는 것은 가장 힘없는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걸 수 있을 만한 본인의 인격, 생존을 걸고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지역구지만, 이정현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권력자로 국회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본인이 결정하면 합의조정하고 청와대와 조율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과연 이 대표의 단식이 투쟁의 수단으로써 의미가 있는지 온당한 일인가 하는 고민을 하셔야 한다. 원래 쇼 정치를 잘하는 분이라 하루 반나절 굶고 어지럽다고 하시는데, 이것이 쇼가 될지 진정성을 담은 투쟁이 될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21대 총선에 재도전 할 의사는 없나.

▶해야죠. 정치인이니. 솔직하게 말하면 우선 정치인으로서 생각은 대선을 승리해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기간을 보면 2년을 일하고 총선이 있는 건데, 그 때 상황을 봐서 국회로 다시 도전해 보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면 그렇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당장은 4년 후에 기필코 국회의원이 되리라는 다짐으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재도전 하는 곳이 기본적으로 순천이겠지만, 다른 지역도 상관없다. 그런데 4년을 경험해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제는 4년간 받았던 혜택. 특히 비례대표는 당의 혜택을 받은 것이라 당이 원하는 일들이 있으면 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함께 여는 미래‘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제가 청년비례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낙선한 후 사무를 볼 공간도 필요했고 정치라는 것이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 김광진으로 얻어진 여러 가지가 있어 함께 여는 미래를 만들게 됐다. 함께 여는 미래라는 단체를 통해 쉽게는 청년 정치인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그것이 교육이든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든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보려 하고 한다.

또한 정치라고 하는 것을 멀게만 느끼게 하는 일들이 많다. 정치학 강의 등 이런 것들이 정치외교학과나 신방과 학생들 위주로 이뤄지는 것이 많은데, 사실 그림 그리는 사람도 정치가 필요하고, 항공운항을 하는 사람도 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까운 법이야기, 정치 이야기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저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평생을 순천이라는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그놈의 아카데미는 서울에서만 하냐’는 생각을 많이 갖고 살았다. 저희가 열심히 활동해서 후원을 받고, 그것이 펀드 형식으로 운영이 되면 예를 들어 서울에서 강연을 들으면 1만원이라고 하면서 지방에서 열릴 경우 강연 참가비가 몇 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을 함께 여는 미래의 힘으로 서울이든 순천이든 대구에서든 같은 가격으로 학생들이 강연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것이 선거의 중요한 이슈가 된 적이 있고, 그 다음이 카카오톡, 팟캐스트로 넘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 중 팟캐스트라는 것은 녹화를 하고 틀어놓고 알아서 들어라 하는 일방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상호 소통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 매체의 성향과 문제를 떠나 깨어있는 지도자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방식의 매체를 함께 여는 미래에서 만들어 함께 하는 중장기적 목표도 가지고 있다.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최근에 항상 사인을 할 때 ‘정의력 있는 세상’이라는 문장을 넣는다. 한국사회가 가만히 보면 여러 가지 힘들이 작용한다. 금력, 폭력, 무력, 권력 등 여러 가지의 힘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의는 힘이 없다. 정의력이라는 단어가 없다.

항상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는 그런 세상으로 지배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언제가 제가 정치를 좀 더 오래하게 됐을 때 국립국어원이 연말 ‘정의력’이란 단어를 우리 국어사전에 등재시키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