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디자이너 허사랑씨가 1월24일 국회 앞에서 전안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출처= 허사랑씨 페이스북)

영세소상공인 보호대책 미비, 탁상행정 비판↑
소비자 안전 위한다지만, 피해는 결국 소비자?


[민주신문=박정익 기자]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도입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이 시행(1월28일) 초부터 거센 반발에 휩싸였다.

영세소상공인들은 전안법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자금의 한계 때문에 결국 소수 업체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안법은 ‘전기용품 안전관리법’과 ‘공산품 안전관리법’을 통합, KC(국가통합인증마크)인증제도를 통해 생활용품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촉발한 소비자 불안 심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용품과 유아복 등으로 한정됐던 KC인증을 의류, 잡화 등 신체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물품 전반으로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섬유와 의류, 잡화 등을 생산하는 업체는 건당 10만~30만원에 달하는 KC 인증 검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자금력을 갖췄다면 리스크가 크지 않겠지만 영세소상공인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더욱이 KC인증제도가 상품 단가 인상을 부채질해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영세소상공인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전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헌법소원, 1인 시위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전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100만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2일을 기준으로 14만4600여만명이 전안법 폐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와 정부도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 맞춰 산업통상자원부를 소관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중심으로 전안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현실

6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전안법 시행이후 KC인증을 받지 못한 상품은 백화점과 쇼핑몰(온오프라인) 등에서 판매가 전면 금지됐다.

만약 비인증 상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영세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일종의 진입 장벽이 생긴 셈이다.

실제로 백화점 등에서 진행하던 오픈 마켓이 법 시행 후 전면 취소되는 등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또 KC인증을 받은 업체가 비인증 업체를 고발하는 등 진흙탕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영세소상공인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달 25일 전안법의 법 적용을 일시 중단하고, 1년 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KC인증만 유예된 것일 뿐 바뀐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고재원(40/남) 성수수제화디자인협동조합 이사는 “KC인증을 받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는 안전했나?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전안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며 “왜 대기업과 정부가 잘못한 것에 영세소상공인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봐야하나”고 분개했다.

이어 “대기업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 대량 생산으로 별다른 피해가 없겠지만 영세소상공인과 초기 창업자들 경우에는 정말 힘들다. 벌써 온라인 판매를 중지한 경우도 많다”면서 “인증을 받아야 하는 업체는 서울 동대문만 1만개가 넘는다. 전국적으로 1인 창업자도 수만명이다. 소규모 창업자, 제조 쪽은 창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가죽제품을 주문제작하는 1인 청년창업가 김하연(35/여)씨는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일단 전안법의 시행으로 KC인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KC인증에 대한 매뉴얼이나 금액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없다. 심지어 전안법 시행부처에서도 가이드라인이 없는 거 같다”며 “KC인증 자체에 수십만원이 들어가면 다품종 주문생산을 하는 입장에서 작품에 들어가는 금속이나 실 같은 부속품도 각각 KC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창작품에 대한 하나의 고유함이 아닌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판매 단가도 KC인증 때문에 올라갈 수밖에 없고, 부속품 하나하나 샘플을 통해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상당히 소요돼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며 “우리가 하는 일도 엄연한 창작인데 이 부분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안법의 폐지를 원한다. 대기업은 자체 인증과 자금이 있어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며 “전안법은 1인 창업이나 청년 창업에 대해 시장 자체에 진입할 수 없는 불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이 법안이 시행된다는 것을 최근까지도 몰랐고, 벌써부터 주변 핸드메이드 작가들은 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대책

2월 임시국회가 개회 후 국회 상임위 차원의 해결책 마련이 모색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전안법의 문제점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수정입법을 추진하는 것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법안의 시행으로 인해 발생한 영세상인과 소상공인의 피해 호소에 대해 대책을 준비 중이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일단은 19대 국회 말에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통과가 됐다. 영세상인과 소상공인들에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꼼꼼하게 못 챙긴 국회에도 문제가 있고, 정부 입장에서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것도 있다”며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산자위 내부에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다. 수정입법이나 대안입법 방식에 큰 이견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안법을 손을 보긴 봐야 한다. 전체적인 문제는 어떤 안이 나을지 두고 봐야 한다”며 “어느 것이 나오든지 현재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 하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야 하니까 산자위 내부에서도 개정안을 준비하고, 당초 법안을 발의한 정부도 개정안을 준비하는 투트랙으로 갈 듯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월 국회에서 상임위 차원의 논의를 통해 로드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실제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기용품‧생활용품에 대한 안전관리에 대한 우려도 있어 어느 수준에서 기준을 잡을 것인지도 논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자부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2일 “현재 민원과 항의성 전화가 하루에도 수백통이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정부 입장은 국민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전안법의 대상은 258개의 품목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전안법의 폐지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근본적으로 법 수정을 통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섬유‧의류 등 품목에 대한 빠른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며 “영세소상공인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과 전체적인 불편을 해소하는 방안과 대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이 논의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도) 빠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