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서 <3040 로드맵>이라는 책을 소개하겠다는 예고편으로 마무리 지은 바 있다. 독서를 싫어하는 독자께서는 “왜 요즘 들어 책 이야기만 하고 그러느냐?”고 불만을 품을지 모른다. 필자 생각에는 이 주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데 있어 몇 권의 책을 소재로 삼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균형을 이루는 것은 나 자신이다

세간의 돌아가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서 전하면 쉽다. 하지만 이는 경솔해질 때가 있다. 사건 하나하나를 놓고 이야기를 풀다보면 사실은 전하되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보여줄 곳을 확실히 보여주려다 보면 사실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게도 된다. 이런 방법은 좋지 않다.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계문제를 논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책의 제목들만 알려주며 따로 읽어보라는 식으로 하지 않는 것, 책의 내용을 다이제스트해서 전하지 않는 것도 필자의 의도다. 반드시 관련 서적을 직접 읽어보기 바라며 다른 사람의 시각도 참고하며 스스로 생각해 답을 찾게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업(業)을 이어간다는 것 또한 삶과 일, 부와 행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이다. 균형을 잃게 만드는 요인은 대부분 외부에 있다.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은 내가 해야할 일인 것이다. 절벽과 절벽을 가로지르는 외줄타기 묘기를 해내기 위해서는 관객의 응원이 많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3040 로드맵>의 원제에 담긴 의미

오늘 소개하는 <3040 로드맵>은 2008년 국내에서 출간된 책으로 독일의 저자 하노 요이가 2003년에 쓴 “Weniger arbeiten mehr Leben”을 번역한 책이다.
지난 회에서 이미 웰빙 트렌드와 함께 유럽에서 시작된 다운쉬프트 트렌드를 설명했는데, 이 책의 저술 시기인 2003년은 다운쉬프트 트렌드가 시작되었을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는 다운쉬프트의 효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대안제시 또한 떨어진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유용한 인사이트를 준다. 저자의 논리는 “다운쉬프트가 대세니까  다운쉬프트 하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다운쉬프트의 간절한 필요를 느껴 스스로 행하고 써낸 저작물이기에 가치가 있다. 유명 횟집에서 엄선된 재료, 정선된 과정을 통해 차려진 회 한 상이 아니라, 금방 바닷가에서 생선을 낚아 즉석에서 회를 뜬 것처럼 그런 감(感)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감(感)은 원제에서 찾을 수 있다. 원제 “Weniger arbeiten mehr Leben”을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어설프게 직역하면 “적게 일하고 더 살자”라는 말로 풀이 된다. 문장의 구조는 상반된 의미의 단어가 대구와 대칭을 이루고 있어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적게 일하자”는 “Weniger arbeiten”와 “더 살자”는 “mehr Leben”로 나눠지는데 여기서 ‘일과 삶’의 의미를 한 번 더 성찰하게 해준다. 

솔직히 자신을 떠올려 보라. 야근과 특근에 시달리며 더 많은 생산성을 요구받다보면 가족도 돌아볼 수 없고 나 자신조차 돌아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시간과 능력은 유한하다. 얻고자 하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삶의 일면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포기하라구? 어떻게?

즉, 이 책의 원제는 제목에서부터 과감히 일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말 자체를 납득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일을 내려놓고 내 삶을 돌이키고 나 자신을 찾자는 의미 자체는 좋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에서 ‘일’이 갖고 있는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일을 내려놓을 수 없다. 우선 이 말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같은 목소리로 양 쪽 귀에 다른 말을 전해 온다. 한 쪽 귀에는 생계를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다른 한 쪽 귀에는 권위주의 조직문화와 관계지향적 사회 속에서 스스로 왕따가 되라는 말로도 들려온다. 월급쟁이가 대부분인 상황 속에서 일을 줄여 인생을 찾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야근과 특근 등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사와 부서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년차를 모두 찾아 쓰는 것도 시작해야 한다. “오늘 회식”이라는 이야기도 거부해야 한다. 조금의 여유를 가져보자는 생각은 순식간에 사면초가의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2008년, 그리고 <3040 로드맵>이라는 한국판 제목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IMF와 서브프라임 사태로 말미암아 구조조정으로 만들어진 ‘조정된 구조’ 속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세대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5년 전 독일의 트렌드로 비춰주었던 것이다. 

사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사오정(45세 정년)’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지켜보며 은퇴 후 재취업의 어려움, 창업실패를 간접체험했기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IMF가 터졌던 시절엔 선배들이 후배들의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황야로 나서주었지만, 평생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있나?

해법이 있을까? 물론 이 책 <3040 로드맵>에는 저자 나름의 4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1)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후, (2)이정표에 맞춰 재정적 균형을 맞추고 (3)다운쉬프팅에 적합한 새로운 직업을 찾은 다음, (4)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이전에 소개했던 책 <서드에이지>나 <평생일자리>에서 제시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무엇보다 길어진 평균수명과 보편적인 생애주기를 볼 때 적절한 방법이다.

그러나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독일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은 판이하다는 것이다. 유럽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경제강국 독일은 정부가 단축근무와 주4일 근무를 주도해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운쉬프팅이 가능한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2017년 한국은 저성장과 침체에 빠져있다. 높은 실업률와 고비용 구조는 이직을 망설이게 만든다. 다운쉬프팅을 위해 사생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노 요이가 제시하는 해법은 옳다. 그러나 한국의 3040 세대는 현실에 발이 묶여 있다. 자기혁신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인가? 5월 초로 당겨진 대선은 어떤 환경을 조성하고 어떤 외부요인으로 개인의 삶을 자극해 올까? 이미 절벽과 절벽 사이에는 밧줄이 메어져 있다. 긴 장대도 손에 쥐어져 있다. 그러나 외줄타기를 하려면 폭풍이 지나간 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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