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어교사 現 국민의당 정책위 부의장저서 <다시 김대중 정신으로> <6·10 민주항쟁 통일의 그날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어제, 오늘>

세월이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렀다. 6·10민주항쟁이 벌써 30주년을 맞이하여 한 세대를 훌쩍 뛰어 넘었다. 필자가 6월항쟁을 맞이한 것은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주권재민(主權在民)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찾기 위해서였다.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감회가 새롭다.

20대 혈기 왕성하던 시절, 필자의 나이가 27살로 젊은 패기로 무서울 것 없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시대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이제 그 젊은 청년은 지천명(57세)의 나이에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받고 구속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2004.03.12)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하고는 전혀 다른 탄핵이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의 최정점 현직 대통령이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받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최순실(구속 수감)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자대학교 부정, 특기생으로 입학한 후 “돈도 실력이다, 돈 없으면 네 부모를 탓하라!”는 정유라의 철부지 망언이 결국 국민의 분노를 샀고 일파만파(一波萬波)가 되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나라까지 흔들렸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권좌마저 내놓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서민층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그래서 민심이 무섭다.

“빵을 달라”는 군중의 요구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고 망언한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에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서양 민주주의 발달의 시금석이 된 1789년 프랑스 시민대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파리의 성난 시민들이 엘리제궁으로 진격해 절대권력 루이16세를 모든 시민들이 합세하여 단두대에 세워 처단한 것이다. 그러한 프랑스인들의 위대함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부역, 협력한 반민족 반역자 수만 명을 처형한데서 또다시 그 면모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일제 36년간의 치욕스런 부역자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달랐다. 독일 부역자들을 처단하며 드골은 “프랑스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프랑스를 배반할 국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비선실세 의혹, 대기업 뇌물 의혹 등이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 의혹을 사유로 민의(民意)의 전당,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재적 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석,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로가결(16.12.09) 되었고, 지난 2017년 3월 31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앞서 헌법재판소(이정미 헌재소장 대행)는 재판관 전원일치(8명)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여 박근혜를 대통령 직에서 파면(17.03.10)하였던 것이다.
지금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되고 있다. 2017년 올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이룬 6.10민주항쟁이 한 세대를 맞이하면서 30년째 되는 해 이기도 하지만 국민을 기만하고 독선독주, 소통불통의 박근혜 정권을 광화문 촛불민심이 “이게 나라냐”며 성난 민심이 결국 ‘적폐청산’을 외친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키고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무엇인지 한번 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어 이렇게 언급한 것이다. 

2016년 5000만 국민은 입에서 입으로 성난 민심을 전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 지근거리 광화문 광장에 1000만 명 넘는 촛불민심이 외친 것은 바로 적폐청산이었다. 그것은 바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박근혜(대통령) 하야하라!’였다. 경악과 분노를 넘어 절망한 국민은 대한민국을 바로 잡기 위해 손에 손잡고 국정농단을 넘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며 중범죄를 저지른 파렴치한 범법행위를 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퇴진시키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것이다. 그리고 외친 것이다. 청소년, 대학생, 중·고생 심지어 유모차부대까지 촛불민심을 대변한 것이다. 전국 대도시 각지는 물론 해외동포들도 동참했던 것이다. 천인공노할 국정농단은 주권재민 국민의 이름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 수감되면서 국민이 부여한 권좌에서 쫓겨났고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에 따라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고 있다. 그게 대한민국 국격을 바로 세운 것이고 ‘법치주의’의 근간인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금과옥조의 선례를 국민의 이름으로 명확하게 남겼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명예와 자존심을 세웠던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37주년 추도식에 다녀오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는 삶이 있다면 바로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했던 것이다. 서슬 퍼런 전두환 살인군사독재에 항거하고 저항하면서 헌법이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되찾은 일이다. “살인정권, 전두환은 물러가라”, ‘군부독재 타도’와 ‘직선제 개헌’을 목이 터지도록 외쳤던 그 당시를 상기하면 감회가 새롭다. 무지막지한 ‘백골단(무술경관)’의 무자비한 폭력진압과 최루탄을 맞으면서 저항한 것이다. 그 당시 27살 청년은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이 글을 쓰면서 책장에 꽂힌 책을 한 권 꺼내 살펴봤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필자가 지난 2010년 9월에 출간한 ‘80~90년대 민주화운동 유인물집 《6.10민주항쟁 통일의 그날까지》(A4용지 1,200쪽)다. 이 책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소장된 책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이하여 필자가 그 서슬 퍼런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이 나라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시위 현장에서 뿌려진 그 당시 유인물들을 한 장, 한 장 모아 2010년 3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에 원본 유인물을 기증하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을 내면서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떠오른 게 있다. 김주열 학생의 죽음, 희생이 있었기에 4·19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60.03.15)에 항거하는 ‘마산데모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킨 4·19혁명의 유일한 상징 인물이 된 열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1987년 6·10민주항쟁이 떠올랐다. 이 역시 이한열(연세대)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전두환 군부살인 독재정권이 타도되었고, 이 나라에 민주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필자로서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1988년 조성만(서울대), 최덕수(단국대), 박래전(숭실대), 1989년 이철규(조선대), 이내창(중앙대), 1991년 강경대(명지대), 김귀정(성균관대) 열사 등이 희생되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 젊은 청춘을 이 나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것이다. 이밖에도 1987년 박종철(서울대) 고문치사를 비롯하여 1997년 9월 김준배(광주대) 학생열사까지 희생을 당한 것이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부터 1998년 50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로 이뤄진 김대중 ‘국민의정부’ 탄생 직전인 1997년까지 17년 동안 매년 4~5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투신, 분실자살 항거, 고문치사, 의문의 죽음으로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해 대신 군부독재정권에 저항, 항거했던 것이다. 희생되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고 외친  토마스 제퍼슨(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그 만큼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상기할 때다.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 동안 나라부채 1300조, 가계부채 1200조 서민경제와 남북문제는 파탄 났고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22조가 넘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하여 수십조 원의 혈세낭비를 부른 자원외교, 방산비리, 그리고 박근혜 정부 들어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쳤던 구호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남북관계에 있어 개성공단은 최후의 평화보루였지만 그것마저 폐쇄, 짓밟은 것이다.

이제 정권은 바뀌었다. 문재인 새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기원전 400여년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고 역설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장소를 ‘아고라’라고 했다. 우리 역시 촛불민심이 말해 주듯이 ‘촛불광장’이 있었다. 필자는 6.10민주항쟁부터 이명박정부 쇠고기파동 촛불집회는 물론 박근혜 탄핵 촛불까지 다 참여 했다. 이제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시대로 이것이 촛불민심을 대변해 주는 최첨단 직접 민주주의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유튜브, 각종 블러그 등이 여론을 형성해 가는 시대다. 이에 걸맞은 정치가 이뤄져야 하고 절대 권력은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위정자는 알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6.10항쟁 30주년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이 땅의 민주주의가 거저 된 것이 아니고 수많은 희생 위에 쟁취되었음을 재차 강조해 둔다, 촛불광장의 민심은 지금도 유효하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문재인정부가 여야 협치를 통해 국민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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