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전편 이어서>

얼마 후 야당의 요구로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긴장한 공군 첩보부대 지휘부는 한 공작요원을 불러 ‘어떡하든 그놈들의 입을 막으라’ 하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국회 조사단이 형무소로 들어가 그들을 만났다. 실미도에서 당한 진상을 밝히고, 자기들이 원래 범죄자가 아니라 민간인이었으며, 국가가 애당초 했던 약속을 어기곤 폐기물처럼 방치했다는 사실 등을 밝혔다면 그들은 살아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생존자 네 명은 군사 보안 때문에 밝힐 수가 없다는 한 마디만 꺼낸 뒤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국회에서 쟁점화하지 않자 국민들의 관심은 그 사건으로부터 멀어져 갔고, 생존자들은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국가를 믿었던 그들이 받은 건 죽음보다 뼈저린 배신이었다.

(제2의 실미도 사건이라 불리는 월미도 사건이 그 후 또 일어났다. 월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던 해군 첩보부대 UDU 요원 5명이 청와대에 가서 공작원의 가혹한 진실을 밝히겠다며 무장 탈영했다. 그들은 인천 율도 발전소 근처까지 진출했으나 해병대와 공수부대에 포위돼 총격전을 벌이다가 결국 붙잡혔다_지은이 주)

실미도 부대가 김일성의 목을 따는 게 목적이었다면, 육군 첩보부대 소속의 선갑도仙甲島 비밀훈련소는 북한의 발전소와 댐 등 기간시설 파괴를 주로 담당할 공작원을 양성키 위해 만들어졌다.

선갑도는 인천에서 배를 타고 세 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외떨어진 무인도였다.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그 절해고도에 죄수들만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사상 초유로 둥지를 튼 건 1968년 초여름 무렵이었다.

30여 명의 대원은 모두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사형수나 무기수 그리고 20년형 이상의 장기수들이었다. 그들은 군복무 중에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질러 중형을 선고받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불명예 전역과 동시에 남한산성 소재 육군교도소로부터 안양교도소로 옮겨져 복역 도중 차출된 것이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명령대로 충실히 훈련에 임한다면 임무 완수 후엔 국가가 전과를 말소하고 영웅 대우를 해준다는 물색관의 말은, 그들에겐 저 멀리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같은 아련한 희망이었으리라.

그들의 임무는 주요 시설물의 폭파였으므로 훈련은 어둠이 섬을 집어삼킨 밤 9시경부터 실시되었다. 새벽 3시쯤 침투훈련을 마치면 비트를 파고 완전무결하게 은신하여 서너 시간을 견디는 괴로운 훈련을 받았다. 발견될 시엔 모진 기합과 몽둥이질이 기다렸다. 또한 폭약을 배낭 속에 가득 채운 채 짊어지고 토끼처럼 날듯이 바위산을 뛰어넘는 훈련도 매일 반복되었다.

그들은 원래 군인이었으므로 기본적인 훈련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정신교육이 돼 있어 단시간 내에 특수 훈련대원으로 정신무장을 시키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교도소에 갇혀 삶을 포기한 채 절망감만 짓씹고 있던 자들이라 일단 재생의 기회가 주어지면 목숨을 걸고 임무 완수에 매진할 터였다.

하지만 예정 기간인 6개월을 지나 1년이 경과하도록 북진 명령이 내리지 않고 대우가 점점 나빠지자 여기서도 실미도처럼 훈련병의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 명이 유언비어 날조 죄목으로 체포당해 육지로 이송됐다. 그들은 인천 주안에 감춰져 있던 첩보부대 안가의 영창에 가둬졌다. 유사시엔 나포 간첩을 가두기 위해 문 안쪽에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방치해 둔 채 하루에 주먹밥 한 개만 주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동료 첩보대원들을 불러 감쪽같이 처치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원은 영창으로 들어가 훈련병에게 마취제를 치사량 이상 투여했으나 죽지 않고 버티자 노끈으로 목을 졸라 질식시켰다. 이어 화장해서 뼈를 바닷속에 던져 버렸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머지 대원들은 갈매기들이 구슬피 울어대는 절해고도에서 하루하루 인내하며 지옥훈련을 받고 있었다. 실미도보다 못지않은 지옥섬 선갑도에서 큰 ‘청춘의 폭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건 어떤 연유일까?

선갑도 훈련소에서는 기간병과 훈련병이 함께 공작원으로서 북한에 침투하기로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실미도 부대에선 기간요원들은 명령만 내리고 훈련병들은 무조건 복종하는 게 철칙이었으므로 자신들의 신세를 일개 소모품이라고 여기게 된 반면, 선갑도의 훈련병과 기간요원들은 일종의 공동운명체로서 동지애를 나누고 있었다. 인간이 같은 인간으로부터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면 영혼 속의 신성이 사라져 야수로 돌변하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토록 치열하던 남북한의 파괴적인 공작원 전쟁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쌍방간에 침투 중단을 협약하게 됨으로써 일단 비극의 일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선갑도 부대를 비롯해 해병대 소속의 마니산 까치부대 MIU 등 비밀부대들이 해체 작업을 밟게 되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선갑도에서도 처참한 비극의 드라마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3부 청춘 무정靑春無情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서서히 잦아들었다. 청운과 개호주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마셨다. 용케 수중에 넣어 갈무리해 두었던 뱀 살과 인삼 뿌리는 이미 한참 전에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소화돼 버렸다.

“시키들, 상황에 따라 좀 땡겨서 마칠 수도 있지, 꼴값하느라고 정규시간은 꼭 지키려나 보군. 그래 놓곤 실전에서는 떡 먹듯 예사로 시간을 어기고 도무지 어이없는 미련퉁이 짓을 해서 대형사고를 내 애먼 사람을 수백 수천 명씩 죽여 놓고도 눈도 깜짝 않는 인간들이 소위 한국의 지도자란 놈들이라니깐!”

개호주 녀석이 콧방울을 벌름거리며 불평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마이크 소리가 산 여기저기로 울려퍼졌다. “대원들에게 알린다! 지금 이 시각부터 잠적을 해제한다! 모두 은신처를 벗어나 30분 내로 귀환 장소로 이동해 집합하기 바란다!”

메아리가 산골짝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배낭을 챙겨 굴 밖으로 나선 개호주가 물을 첨벙첨벙 밟고 저쪽으로 건너가더니 갑자기 질퍽거리는 흙탕 위에 드러누워 미친 개처럼 마구 뒹굴었다. “왜 그래?” 청운이 놀라서 물었다. “너도 빨리 해.” “응?” “멀쩡하게 내려가면 북한에 넘어갔다가 초대소에서 융숭하게 대접받고 왔다고 생트집을 잡을지도 모른단 말야.”

“설마 그럴라구.” “야, 설마가 사람 잡는다.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려 죽은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아무도 모른대. 그리고 빨갱이 가족뿐 아니라 사돈의 팔촌까지도 연좌제로 묶어 못살게 족쳤대.”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 여자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소녀 시절에 서울로 올라와 온갖 궂은일을 하다가 스무 살이 넘어 홍콩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 술집에서 호스티스 등으로 일하던 중 젊은 한국인 사업가를 만나 한 살 어린 그 연하남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던지 부쩍 싸움이 잦아졌다.

그날도 다툼을 벌이던 중 남편은 여인을 둔기로 때렸고, 갑자기 쓰러지자 겁을 먹은 그놈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끈으로 목을 묶은 뒤 일본으로 도주해 버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는 일본의 북한 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다. 북한으로 망명하여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거절당한 그는 생각을 바꿔 미국 대사관으로 도주했다. 미 대사관은 놈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고 한국 대사관에 연락하여 신병을 인계했다.

그는 결국 한국 대사관으로 갔고 궁지에 몰린 놈은 잔꾀를 부리는데, 아내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었고 자신은 북한 대사관에서 도망쳐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대사관의 증언과 놈의 알리바이 부족으로 거짓말은 금방 탄로났고, 일본 대사관 측은 이러한 내용을 한국 외무부와 중앙정보부에 통보했다.

그런데 중앙정보부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놈을 한국으로 압송하여 기자회견을 강행하는 데 성공했다. 놈은 기자회견에서 가증스러운 눈물까지 흘려가며 자신이 북한의 간첩에게 납치될 뻔했다는 진술을 했다. 아예 안기부의 요구대로 아내를 북한의 여간첩이라고 진술했다.

중앙정보부가 이러한 공작을 했던 배후에는 군사정권의 이해타산이 있었다. 그 당시엔 불꽃 같은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정권은 극도의 부담을 안고 있던 상태였다. 또한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약속한 민정 이양을 거부하고 다시 대선에 출마한 시점이었다. 위기에 몰린 상황에 군사정권에게 요긴하게 필요했던 것이 바로 북풍北風 공작이었다. 중앙정보부는 이미 자체 조사를 통해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 파악했지만, 국면전환용 대공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엉뚱하게도 북한의 납치미수사건으로 조작해 버린 것이다.

여인의 시신은 보름쯤 지난 후 부패한 냄새를 참다 못한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태에서 발견되어 홍콩의 무연고 묘지에 외로이 묻혔다.

이후 안기부는 여인의 유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모조리 중정 지하실로 끌고 가 잔인한 고문과 협박을 자행했다. 간첩으로 낙인 찍힌 가족들은 감옥에서 정신병에 걸려 폐인이 되었고, 친척들도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참다 못해 홧병으로 사망하는 등풍비박산이 났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또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누가 볼지 모르니까 빨리 서둘러.”

청운은 만약 남이 보면 미친 놈들이라고 비웃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탕에 드러누워 뒹굴었다. 차가운 몸만큼 시간은 응고돼 버린 듯싶었다.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꼭 해야만 하는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야, 그만하고 일어서! 너 꼭 광인 같다.” 개호주가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 그대로 끌고 내려갔다. 청운은 진짜 미친 놈처럼 히히 웃으며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연병장엔 비 맞고 굶주린 살쾡이 같은 꼬락서니의 훈련병들이 이미 모여 서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땐 저마다 다른 얼굴로 딴 꿈을 꾸었을지 몰라도 그곳에선 매한가지 운명을 지닌 군상群像인 성싶었다.

검은 모자 조교의 명령으로 앉은번호 점호를 실시했다. “하나, 둘, 셋…… 아홉, 이상!” “좋다! 모두 일어서라! 곧 지대장님의 특별 훈시가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선글라스를 낀 불독 같은 얼굴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그는 윗입술로 윗니에서 뭔가를 닦아내는 듯 움죽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여러분,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주어진 악조건을 회피하지 않고 극복해낸 여러분은 우리 조국의 작은 영웅들이다. 오늘로써 일차적인 훈련이 종료되었다! 혹독한 극기훈련에서 살아남아 최강의 전사로 불사조처럼 재탄생한 여러분의 무운을 빌며, 자랑스런 해골단의 자부심을 갖고 항상 조국에 충성하길 바란다!”

청운은 문득 놀랐다. ‘처음에 24명이 함께 훈련을 시작했었는데 겨우 9명만 남았다니…… 그럼 15명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실 그동안에도 하나 둘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보며 충격과 분노를 느꼈었지만 며칠 지나면 억지로라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었다. 몽둥이에 맞아 죽거나 절벽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떨어져 죽은 경우도 있었고, 반병신이 되어 귀가 조치되거나 탈영하는 자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일종의 룰렛 게임 같은 자해 시도를 벌이는 놈도 있었다. 훈련 도중 다치면 외부의 병원으로 후송된다. 지옥 같은 현실에 지쳐 버린 훈련병들 중엔 간혹 일부러 자신의 몸에 상해를 가하기도 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칼이나 총으로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는 것이다. 몸이 좀 상하더라도 병원 침대에 누워 며칠 푹 쉬거나 귀가 조치되려고 벌이는 짓이지만 그러다가 정말로 황천길을 밟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잠시 더 살아 있을 뿐 같은 신세일 수도 있을 거야. 개미가 1밀리미터를 더 걸어간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나? 살아남은 걸 적자생존의 영웅이랍시고 입에 발린 칭찬을 하는데, 실은 선한 사람은 도태시켜 죽여 버리고 평범한 사람을 악독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

검은 선글라스는 청운의 마음속에 일렁이는 상념을 흩트리듯 목청 높여 말을 이었다.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위대한 영도자이신 박대통령의 지휘 아래 조국 근화대라는 단군왕검 이래의 창대한 이상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 저 윗동네(북한을 지칭함)의 동족이란 것들이 공산당의 탈바가지를 쓴 채 사사건건 우리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방해하는 것이다! 어린 영웅인 여러분은 일당백을 넘어 전 북괴군을 쳐부순다는 강력한 일념으로 매사에 임해 주기 바란다. 우리의 참된 정신을 붉은 피로 모아 민족의 제단에 바치려는 각오가 중요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말마따나 생즉사 사즉생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한곳으로 모일 때 우주가 감응하여 진인사대천명의 신비로운 기적의 통일이 이뤄질 수 있음을 명심하라! 더욱 노력하여 앞으로 큰 영웅이 돼 주길 바란다.”

그는 일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마의 주름살과 입귀만으로 짐짓 심각한 표정을 꾸며 훈련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모습에서 일말의 불안과 초조한 강박증의 기색을 본 후에야 그는 불현듯 표정을 바꿔 원래대로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무슨 큰 시혜라도 내리듯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

<다음편에 계속>

작가: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취재해서 르포 시장의 하루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현재는 지옥극장 시리즈 제3탄 몽키하우스를 집필중이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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