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각각 징역 12년·9년 선고했지만 대법원 “진술 믿기 어렵다”
"국민감정 동 떨어진 판결" vs “확실한 증거 없으면 무죄로 봐야”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대법원이 5번의 재판 끝에 무죄를 확정했다. 이에 이혼남과 미성년자와의 성관계가 성폭행이 아닌 사량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2011년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던 조모(48)씨는 자신의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당시 아들보다 두 살 어린 15살 A양을 처음 만나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이듬해 5월까지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또 A양의 가출을 유도하고 집으로 불러 들여 한 달간 동거하면서 A양을 임신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A양은 출산 후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며 조씨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조씨는 지난 2013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2014년 1월과 7월 열린 1심과 2심 재판부는 “중학생인 피해자가 부모 또래의 우연히 알게 된 남성을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하게 돼 성관계했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춰 볼 때 수긍하기 어렵다”며 “A양 진술이 비교적 일관되고 구체적이라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조씨에 대해 각각 징역 12년과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대법원은 A양이 조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편지를 근거로 “A양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A양이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조씨에게 ‘사랑한다’라는 취지의 편지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근거로 A양이 피해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또한 2014년 검찰이 지목한 성폭행 시점 이후로도 A양이 조씨를 계속해서 만나온 점 등을 지적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역시 “조씨와 A양이 서로 걱정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어 A양이 조씨에 대한 두려움과 강요로 인해 서신을 작성했다는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하고, 이를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국민 법 감정과는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는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하면, 폭행‧협박 등이 없어도 범죄가 성립한다는 것으로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A양이 사건 당시 13세 미만이었다면 조씨에게는 강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성폭행죄가 인정되는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은 ‘사랑’을 주장한 조씨의 주장은 일종은 ‘그루밍’이라고 하는 범죄수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루밍은 성적 유혹의 의도를 갖고 피해자에게 접근해 신뢰관계를 쌓은 뒤 성적 가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길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그루밍에 의한 성관계를 “피해자가 합의했다”거나 “서로 사랑한 사이”라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 외에 직접 증거가 없다면 범행 정황을 따져봐야 한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확실한 유죄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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