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협업한 '나전 클러치' 방미 영부인 손에...한지-도자기 소재 가방 선보일 예정

전통공예 나전칠기를 활용해 '나저가방'을 선보인 황교준 오리엔트아트랑 디자이너 사진=서종열기자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영부인(김정숙 여사)이 저희 가방을 드실 줄은 꿈에도 몰랐죠.”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패션이었다. 세련되고 우아한 영부인의 패션센스가 국제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부인이 손에 쥔 클러치도 같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자개’로 마감된 클러치는 입고 있던 청자색 한복과 어울려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됐던 바로 그 자개 가방을 만든 황교준 디자이너를 지난 11일 을지로에서 만났다. 그는 나전가방을 영부인이 들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새로운 소재 찾다 ‘자개’에 이끌려 

“아마 나전칠기 장인 김용겸 선생님에게 의뢰가 들어왔던 것 같아요. 김용겸 선생님이 몇년 전 쯤 나전가방을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원래 하던대로 가방 디자인은 저희가 했고, 외부를 마감하는 나전 작업은 선생님이 맡았죠. 그 제품을 만들고 저와 선생님이 여러 방면으로 힘들게 영업을 하던 중 김용겸 선생님께서 인연을 만나 방미 중이었던 김정숙 여사가 들고 나왔던 거에요. 아무 말을 듣지 못했던 제가 놀랄 수밖에 없었죠.”

황교준 디자이너는 자개 클러치를 김정숙 여사가 사용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자신은 그저 언제나 그랬듯 가방 디자인만을 했을 뿐, 별다른 역할을 없었다는 얘기다.  

그와 김용겸 장인은 어떤 인연을 갖고 있을까. 황교준 디자이너는 “2009년부터 함께 협업을 했으니 벌써 10여년이 다 돼 간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가방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들려줬다. 

“사실 저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그래픽을 전공했죠. 대신 사회생활은 패션회사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의류 및 소품에 관심을 갖고 됐고, 가방도 주의 깊게 지켜봤죠.”

순탄했던 그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이었다.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하면서 가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패션회사에 있다보니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하게 됐죠. 당시 제가 맡은 일은 동대문의 보세 가방을 가져와 패션디자이너에게 공급하는 역할이었죠. 패션위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동대문표 보세가방들은 쇼가 끝난 뒤에 그야말로 날개돋인 듯 팔려나갔죠. 그래서 저는 이 가방에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가방을 맏드는 동대문 사장님들은 굳이 비용을 들여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결국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란 생각에 ‘오리엔트아트랑’을 설립했죠. 이 회사의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나전가방’였습니다.”

황 디자이너는 당초 ‘자개’를 중요한 오브제로 활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자개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일단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 지금의 나전가방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패션과 졸업한 디자이너가 아니네요. 그래서 전문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지 못했죠. 대신 저는 다양한 소재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사용되는 많은 소재들을 살펴봤는데, 그중 ‘자개’를 활용한 가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김용겸 장인과 함께 협업에 나섰죠.”

문하생 생활하며 가방에 대한 열정 불태워

황교준 디자이너는 인터뷰 시간 내내 자신이 패션이 아닌 그래픽을 전공했다고 강조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만큼 아직 디자이너로 불리는 게 어색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방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을까. “그냥 좋아서, 무작정 시작했다” 

“가방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 다니던 회사에서 가방 디자인을 해서 샘플실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샘플실에서는 내 디자인을 보더니 만들 수 없는 디자인이라고 거들떠도 안봤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다른 샘플실을 찾았죠. 그곳에서 ‘문하생’을 자처하고 1년 반 이상을 무급으로 일했어요. 아침 일찍 가서 청소하고, 가죽 챙기고, 재단하고, 자르고... 가방 디자인을 그렇게 현장에서 실습으로 배웠죠.”

대책 없이 저지른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기술도 늘게 됐다. 그러자 과거 자신의 디자인이 왜 만들 수 없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1년 반 정도 지나서 본격적으로 가방 디자인을 해보려 하니, 샘플실 사장님이 오히려 그냥 자기랑 같이 일하자고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서 정중히 거절하고 지금은 파트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개 클러치의 첫 샘플이 탄생했죠.”

어렵사리 가방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이후 자개 클러치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그 과정에서 유명 패션디자이너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런던패션위크에 해마다 참석하는 신진 디자이너 중에 이승익씨가 있어요. 지난해에는 그분과 함께 런던패션위크에 가방디자인을 콜라보레이션하기도 했죠. 올해도 영국에 함께 갈 겁니다.”

지난해 6월28일부터 7월2일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나저가방을 손에 쥐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인, 예술가와 함께 하는 ‘랑’ 만들고파

황교준 디자이너는 현재 패션쇼 준비 외에도 오리엔트아트랑의 대표 라인업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나전가방을 비롯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가방들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초창기에 제작됐던 나전가방은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어요. 장인이 한땀한땀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좀 더 합리적인 가격대 제품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개로 외부를 모두 감싸는 것보다는 가죽을 더 많이 사용해 실용성은 높이고 가격대를 낮춘 매스티지 제품을 올해 안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물론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한 하이엔드 제품은 앞으로도 계속 선보여야죠.”

최근에는 한지와 도자기를 오브제로 활용한 가방들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청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청자백’은 이미 출시해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가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회생활 초창기 때 앞으로 15년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가방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스스로에게 했던 그 약속을 이제 2~3년 정도 후면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제일 행복하죠. 앞으로의 계획은 오리엔트아트랑을 더 성장시키는 거죠. 장인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랑’을 꼭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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