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제도적으로 피해자 구제하는 안전 보장장치 강조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사회각층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보이면서 그동안 암흑속에 묻혀있던 피해사실들이 속속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피해자들의 의견이다. 

더욱이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이 후에도 별다른 제재 없이 같은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가해자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피해자들은 옥죄고 있는 극도의 두려움에 심각한 상황에 내몰렸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이후 가장 끔찍한 것은 가해자와 다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어요. 잠을 못자고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무서워서 학교를 며칠 결석했어요”

현재 건국대에 재학 중인 여대생 A(21)씨는 지난해 학교 페이스북의 대나무숲 페이지에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 학술답사에 참가한 A씨는 마지막 날 오전 7시경 같은 학과 선배 B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A씨는 깊은 수면에 빠져 있었으나 몸을 더듬는 B씨의 손길 놀라 벌떡 일어났고 B씨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사람들 사이로 몸을 피했다.

이에 A씨는 즉시 학교 측에 이 사실을 전달했고 학교 측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B씨를 퇴학 처분했다. 또한 경찰에도 신고했으나 B씨가 초범에 음주상태의 범행인 것을 참작해 벌금형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A씨는 “그래도 괜찮았다”고 말했다. 가해자를 학교에서 계속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불과 얼마 후 악몽과 같은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B씨의 어머니와 누나의 눈물과 사과 편지에 마음이 흔들린 A씨가 합의를 해 준 것이다.

퇴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해줬던 A씨의 합의는 B씨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고 기소유예를 받은 B씨와 B씨 어머니의 태도는 그 날로 완전히 돌변했다. B씨는 기소유예처분을 근거로 학교를 상대로 퇴학 취소 소송을 냈으며 강제조정 결과 퇴학이 취소됐다.

현재 A씨는 성추행 폭로 이후에도 가해자 B씨와 함께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 악몽 같은 상황에 처하고 말았는데 A씨는 “피해 이후 병원에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범행이 일어난 시각인 오전 7시면 불안감에 사로잡힌다”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해당 대학인 건국대 측은 퇴학 취소에 불복하는 재판을 이어가고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이렇듯 A씨에게 악몽같이 다가온 현실은 고발을 못한 다른 피해자들이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매번 같은 공간에서 가해자를 계속 마주치며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동시에 주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까지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C씨는 오래전에 당한 성추행 피해가 있으나 현재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미투운동에도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발 후 직장에서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데다 제도적인 해결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C씨는 “이미 주변에 조금씩 말을 흘려봤으나 동정의 시선만 받고 끝이었다. 누구도 폭로를 통해 회사에서 가해자가 제대로 된 징계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폭탄을 떨어뜨릴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C씨는 “언론이 미투 고발로 지목되는 당사자의 난처함을 주목하고 있지만 자신의 일상을 걸고 폭로하는 고발자의 상황이 훨씬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미투운동이 사회각층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이끌자 전문가들은 이제는 제도적인 구제를 통해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한 단계라고 조언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정하경주 활동가는 “이제 가장 초점이 돼야 할 것은 피해자들이 즉각적으로 (피해를) 알리고 처리될 수 있는 구조들이 투명하게 작동 되느냐에 대한 고민이라며 피해자가 참으면 된다는 식의 대응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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