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즈 딸랑 두 대뿐인 아일랜드 렌터카 회사,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 월터의 선택은?

[사진=벤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의 현실이 된다> 영화 장면 캡쳐]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가끔 어떤 것을 묘사하고자 할 때 장황한 설명보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대신해주는 때도 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벤 스틸러 주연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원제: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가 그렇다.

라이프지 필름 현상부 팀장인 월터(벤 스틸러)가 유명 사진작가인 숀 오코너(숀 펜)를 찾으러 떠나 아일랜드에 갔을 때,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빌렸던 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한국지엠의 전신 대우자동차의 첫 경차 마티즈다. 물론 몇 년 앞서 ’티코‘가 경차로 나왔지만, 티코는 일본 스즈키 브랜드 3세대 ’알토‘의 보디를 그대로 가져와 3기통 엔진을 얹어 내놨던 모델이다.

영화 속에서 경차가 상징하는 의미는 컸다. 영화 전반에 걸쳐 평범하고 소박함이 묻어났으며, 주인공 월터 역시 그 평범함을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주인공 셰릴 멜호프 역을 맡았던 크리스틴 위그가 불렀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의 ‘지상관제소에서 우주 파일럿 톰 소령에게(Ground Control to Major Tom)'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소박함과 평범함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영화 속 그 모습들이 없었더라면 보는 재미도 없을 테다. ‘라떼’라는 신조어처럼 기억 속 분위기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이에 의도하고 감독이 만들어낸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이 멈춘 듯한 아일랜드 공항에서 월터가 렌터카를 빌리는 모습이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 마티즈. 그의 선택은?

현실에서도 경차는 많은 의미가 있다. 1998년 탄생한 마티즈 1세대 모델은 800cc 3기통 엔진에 CVT 변속기를 달았다. 문제도 많았지만 티코도 그랬듯이 마티즈는 드라이빙 재미를 위해서 탔던 차가 아니다. 현대 생활을 위해 이동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담겨 있던 차였다. 당시 IMF를 겪었던 우리나라에서 경차는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긴 전우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듯하다.

마티즈의 흥행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이다. 마티즈의 디자인은 사실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피아트를 위해 만들어졌다. 피아트는 최근 여자 연예인들도 많이 타는 친퀘첸토(500) 제조사다. 마티즈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인으로 손에 꼽힐 정도로 알아주는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작품이다. ‘루치올라’라는 컨셉트카로 모터쇼에서 먼저 선보였고 피아트에게 팔려고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눈독을 들인 대우에게 넘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흥행의 또 다른 이유는 경제성이다. 기득권만 누렸던 자가용 시대, 그 시기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 살 수 있었던,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었던 마티즈, 부담 없는 경제성으로 젊은 세대들을 끌어모았다. 말 그대로 한 가족 세컨카를 소유할 수 있는 근간이 된 것이다. 경제 불황 속 인기 자동차 타입은 작은 차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SUV의 인기 속에서도 소형 SUV 시장이 활성화 된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거 같다.

우리 경차들은 세대 변화, 페이스리프트 등을 이루며 디자인이나 사양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진화하고 있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다양한 선택지가 없다는 것. 유럽의 것처럼 경차에서도 운전의 재미를 추구할 수 있다면, 일본의 것처럼 경차도 실용적일 수 있다면? 혜택, 마진에만 집중하지 않고 우리만의 또 다른 경차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세계화에도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경차, 소형차 분야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더욱 다양한 선택지로 나왔으면 하는 게 지금의 바람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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