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노회찬이 이끌던 1세대와 3세대 잇는 2세대 대표주자
“과감한 의제 선정과 선명한 정책만이 결국 ‘진보정치’ 생명줄”

[민주신문=강인범·김현철 기자]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정쟁의 차별화가 아닌 정책 차별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지지받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겠다”고 했다. ⓒ 민주신문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는 길다. 

1945년 해방 이후 진보를 기치로 내건 무수한 정당들이 일어섰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진보정당이 본격적으로 국회 제도권 틀에서 주목 받은 시기는 2004년 민주노동당 권영길·조승수 의원이 원내에 입성했을 때부터다. 당시 민노당은 정당득표율 13%에 비례대표 8석을 포함, 총 10석으로 제3정당 위치를 확보했다.

지난 9일 정의당엔 1세대 지도부가 물러나고 2세대 체제를 알리는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심상정 전 대표가 4·15총선 실패 책임을 지고 돌연 사퇴를 선언하면서 조기 당대표 선거를 치룬 것이다.

4파전이었던 선거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공방 속에 김종철 후보가 배진교 후보를 제치고 당대표에 선출됐다.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90학번이다. 

학생운동 조직 ‘대장정’ 설립을 주도한 운동권 출신으로 1998년 국민승리21 권영길 대표의 비서를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2006년엔 36세 나이로 민노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바 있다. 

김 대표는 이제 당대표로서 ‘정의당 2.0’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진보정당의 대표격인 정의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김 대표 선출이 갖는 의미가 궁금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민주신문>이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김 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 15일이었다.

 

◇ “보다 진취적 의제 필요한 시대 도래”

인터뷰가 시작되자 먼저 김 대표는 “정의당 중간 세대에도 당을 이끌 사람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를 마련한 선거였다”며 “거센 도전이 저뿐 아니라 제 세대에 성큼 다가왔다. 우리 세대가 못하면 다음 세대가 힘들어진다. 1세대 노회찬·심상정 시대와 ‘2030’ 3세대를 잇는 2세대 대표주자로서 성공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를 떠 안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 결과에 대한 소회와 관련해선 “딱 30초 기뻤다. ‘앞으로 어떻게 돌파해 나가지?’라는 생각에 기쁨보단 무게감이 확 짓눌렀다”고 표현했다.

- 솔직히 정의당 안팎에선 노(회찬)·심(상정)을 이을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이 숱하게 떠돌았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만큼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2중대 탈피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 복지정책과 민중의 삶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의제를 제시하고 결과를 이뤄냈던 진보정치의 역할은 인정 받아 왔지만, 대중적 기반의 외연 확장이란 측면에선 지난 총선 결과도 그렇고 김 대표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 얘기하자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시간 지나면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 않는가. 사회 불평등, 경제위기 시대에 더 진취적인 의제를 꺼내도 상관없는 시대가 왔다. 예를 들면 기본재산제, 올 초 심상정 전 대표가 청년기초자산으로 스무살이 되면 3000만 원을 준다고 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현금성 금융자산은 청년기초자산 개념으로 제공하고, 부동산 주거 자산은 정부가 공공주택을 많이 확보하도록 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안하려고 한다.”

김 대표의 답변은 계속 이어졌다. 

“또한 지금 얘기 나오는 기본소득보다는 전국민고용보험, 전국민소득보험 이런 의제를 과감하게 던질 때 국민은 우리를 지지할 것으로 본다. 물론 이런 것들을 이루려면 강력한 증세와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부자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과 저소득층도 세금 더 내고, 마지막 고소득층은 더 많이 내는 보편적 누진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 뒤 진정한 재분배를 하는 방식이다.”

지지층 확보를 위해 선명성 있는 정책정당의 방향성도 제시했다.

“지금 우리당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것도 꼭 필요한 법이란 걸 다 알지만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며 다른 정당은 쉽게 꺼내지 못한다. 처음에는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얘기를 계속 강력하게 말할 것이다. 이런 점들이 반짝 지지층이 아닌 고정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고, 선명성이 담보된 정책정당, 진보정책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정의당이 가야할 방향이다. 연금통합문제, 공공기관 구조개혁, 지방행정구역개편, 서민도 참여하는 증세 등 그동안 쉽게 말 못했던 것들을 꺼낼 것이다.”

김 대표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의제 선정도 명확하고 뚜렷해 보였다. 

-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도 정의당이 하던 역할을 하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가령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것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법안을 발의했다. 정책이 겹친다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당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두 개다. 하나는 내부분열 세력 대 세력 싸움으로 분당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가 더 무서운 건데 같은 생각을 가진 당이 두 개가 있는 것이다. 색깔이 다른 정당과 싸우는 건 당연한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정당끼리의 대결은 잘못하면 한 정당이 사라질 수 있다. 같은 생각을 하는 당이 두 개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민주당과 비슷한데 왜 존재 가치가 있어야 돼?’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우리가 뭔가 과감한 의제를 던졌을 때, 그 방향이 옳다면 정의당 잘 하는데 왜 민주당이 지지를 받아야해 이럴 수 있다. 존재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서민층들에게도 세금 올리겠다는 건 금기 사항인데 그런 금기들을 앞으로 과감하게 깨나가겠다. 과감한 얘기를 꺼내는 정의당다운 의제를 담대히 제시하는 정당이 되겠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사회 불평등과 경제위기 시대에 국민들의 삶을 위한 더 진취적 의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 민주신문

 

◇ ‘연대하지 않고 이길 수 있겠는가’… 대중적 외연 확대 숙제

- 정의당이 노동 중심에서 여성·젠더·소수자 문제에 치우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타겟층이 바뀐건가?

“억울한 부분이다. 그것 말고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왔다. 다만 그런 부분이 유독 눈에 띄는 건 다른 당이 그 부분을 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노동현장에서 차별을 받으면 안되는데 타 정당은 보수 기독교 반발이 무서워 건들지 못하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와 우리가 싸우고 하니까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 점에선 답답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안해야 하나 하면 그렇지 않다. 여성·젠더 문제는 한 사회의 절반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노동·교육·주거와 동떨어진 특별한 의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것도 잘 하면서 오히려 더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는 것이다. 다른 당에서 아무도 안 하니깐. 성평등만 내세운다 하겠지만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 본다.”

- 김 대표의 임기 2년 동안 재·보궐선거에 지방선거·대선까지 있다. 

“보궐선거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서울·부산시장선거 준비를 할 것이다. 일단 내년 4월 선거를 잘 치루고 나면,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선거는 2년 뒤 지선이다. 대선과 보궐은 우리가 잘 조직하고 서포트하면 되지만, 지선은 수천명의 후보가 필요하고 그 분들이 성과를 내야하는 선거다.”

- 선거 때만 되면 ‘연대하지 않고 이길 수 있겠는가’라는 구조적 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엔 우리 내용으로 끝까지 갈 것이다. 민주당 귀책 사유로 치루는 선거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에 국민과 그 당원들도 실망할 것이다. 우리는 당원·당규를 지키라 말하겠지만 말을 안 듣는다면 우리 후보를 내서 성평등한 서울·부산, 사회적 약자가 잘 사는 서울·부산을 만들기 위해 선명한 정책을 내세워 승부를 볼 것이다.”

- 재차 선거 전에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여론이 정의당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 여론이란 게 국민의힘은 안된다 이거다. 그 심리를 민주당이 지금까지 이용해온 것인데 더 나은 정당이 있는데 왜 더 나쁜 정당과 덜 나쁜 정당 사이에서 고민하는가. 그건 국민들에게도 좋지 않다.”

 

 “양극화 심화와 중산층 붕괴 등 ‘정치’의 역할 더 중요해진 때”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일단 내년 4월 선거를 잘 치루고,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선거는 2년 뒤 지선”이라고 강조했다. ⓒ 민주신문

김 대표는 양극화 심화, 중산층 붕괴, 부동산값 폭등, 코로나19 보건 위기 속에서 ‘정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전국민고용소득보험 등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들 소득보전 개념이 필요하다. 일선 현장의 자영업자분들에게 물어보면 일정 수준의 보험료를 내는 것에 동의하는 의견이 상당하다. 비정규직은 실업이냐 고용이냐인데, 결국은 재정 문제로 큰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부동산 문제의 경우 집값이 일정 부분 진정되고 정부 대책이 효과를 볼 것으로 본다. 7·10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다주택자와 투기 수요가 엄청 손해볼 것이라는 세제 강화 개념이다. 하지만 정책이 너무 늦게 나왔다. 또한 집값이 떨어지면 일반 서민들이 살 수 있냐 문제인데 그렇지 못하다. 이미 많이 올라있기 때문에. 그래서 대책이 필요한데 하나는 공공주택을 많이 지어야 하고 토지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개념, 여기에 주거 취약계층은 주거비를 직접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에겐 소득 대비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담될 수 밖에 없다. 이들에게 월 20만 원을 지원하는 정책 등 층·층별로 촘촘한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 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이 가야할 방향은 무엇이라 보는가. 

“두 가지다. 하나는 재분배로 함께 살자. 어떤 방법을 써도 현재의 불평등을 완화할 순 있어도 전체를 바꿀 순 없다. 그나마 불평등을 조정할 수 있는 건 세금밖에 없다. 앞에서도 말한 강력한 증세와 강력한 재분배,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길이다. 기본소득도 그런거 아닌가. 기본소득 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나. 많이 걷어서 많이 나누는 건데 그럴려면 큰 정부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기후문제다. 기후는 전 세계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데 에너지 공급방식, 생활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 역시 그럴러면 돈이 많이 드는데 결국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정부의 재정역할이 점점 강조될 것이다.”

김 대표의 마지막 일성은 당원과 국민들에 대한 당부였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도 높은 국가의 특징은 진보정당의 활동이 활발하고 제1야당인 나라다. 정의당의 성장은 국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요즘 자주 하고 있는 말인데 가장 돈이 안드는 방법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시면 복지국가라는 선물로 돌려드리겠다. 또한 당원들에게도 동참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당원은 일반 국민과는 다른, 함께 뛰어 주셔야 하는 주체다. 그래야 함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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